+ 영웅왕 만남!
+ 5차 성배전쟁 배경
+ 에미야 시로의 쌍둥이 누나
키리츠구는 쌍둥이 아이들의 입양 수속을 밟는 동시에 집을 정비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딸이 있는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남자였다. 두 아이의 방을 분리 해 주어야 하나? 아니면 어릴 때는 같은 방을 쓰게 하다가 추후에 분리를 해 주어야 하나? 가구의 모서리에는 안전스펀지를 붙여야 하나? 아니, 가구 자체를 어린이용으로 사는게 옳지 않을까? 식기는? 의복은? 장난감은 어떤 것으로 하지? 어린이의 여린 피부가 다다미가 깔린 좌식 생활을 견딜 수 있나? 게다가 키리츠구는 평범한 집이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제 에미야의 성을 잇게 된 두 아이는 비록 키리츠구의 마술각인을 물려받지 않았지만, 마술사의 아이들이었다. 각기 재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술사의 피를 이은 징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을 고려하면 마술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키리츠구가 보금자리가 될 집을 선택하는데 영맥을 고려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키리츠구는 몇 없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퇴원 날짜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후지무라 타이가가 이론과 현실은 다르며 도리어 이렇게까지 과하게 준비를 할 경우 실수를 할 수도 있다며 조언을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과연, 타이가의 충고는 치리츠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실현되었다.
*
적요에게는 희귀한 마술 특성과 더불어 마술 회로 역시 거듭 수련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아마도 진흙의 범람이 불러일으킨 화재 속에서도 마술을 이용해 동생과 자신을 지킨 것이 아닐까 추측될 정도였다. 그에 비해 시로는 마술 특성이 애매하고 마술회로는 전혀 사용해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마술 가계는 1인 전승. 그 탓에 자식이 둘 이상일 경우 가계를 계승하지 않을 아이에게는 아예 마술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 탓인지 적요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화재 현장에서도 남동생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지극정성으로 동생을 돌봤다. 편식하지 않도록 식사를 챙겨주고 양치질을 챙겨주는 것 부터 혼자가 무서워 우는 동생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 까지. 손이 많이 갈 것을 각오하고 육아서적까지 한 권 사 놨던 키리츠구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적요는 키리츠구의 식단과 생활 습관까지 거침없이 단속하기 시작했다. 키리츠구는 일평생을 통틀어 자신의 적절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자각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분명 그는 유서 깊은 명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그럴듯한 가정을 이루기는 했지만 아인츠베른은 상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는 거의 가치가 없는 가문이기도 했다. 키리츠구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연두색 눈동자에게 등 떠밀려 어렵사리 습관을 고쳐나갔다.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비누와 샴푸를 사용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단계를 거쳐, 그들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짜 가족이 되어갔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적요는 간단한 심부름을 가며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고민거리를 다시 끄집어냈다. 영문 모를 화재사건 이후, 깨어나서는 안될 기억이 깨어났다. 병상에 누워있는 적요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다친 몸 보다는 봇물 터지듯 뒤엉킨 전생의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적요는 도와달라며 자신을 끌어안던 새하얀 팔들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요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곳의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목소리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다는 것 정도였다.
마술과 마술사가 버젓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적요는 다시금 자신의 마술회로를 의식했다.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사 장기는 힘을 사용할 때 마다 신경통에 가까운 통증을 낳곤 했다. 꼭 필요한 힘이기에 사용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남동생이 이런 힘을 사용한다고 나선다면 뜯어말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적요는 자신을 반겨주는 가게의 여주인에게 배꼽인사를 한 뒤 가게 안으로 총총 걸어 들어갔다.
성과 없는 고민 대신 새로운 고민이 적요의 머릿속을 채웠다. 다름 아닌 양부의 건강에 대한 고민이었다.
키리츠구에게서는 정체불명의 화재가 났던 밤, 지척까지 밀려들어왔던 끈적한 것의 기운이 엷게 묻어났다. 그저 그렇게 느껴지기만 하는 것이라면 다행일텐데 불쾌한 기운이 점점 강해질수록 키리츠구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좋지 못한 것이 키리츠구의 생기를 빨아먹는 느낌이었다. 적요가 키리츠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것은 분명 의학적 처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마술적인 문제일 텐데, 적요는 아직 마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키리츠구 역시 마술사인 것 같지만 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는 키리츠구의 역량 역시 넘어선 일인 것 같았다. 어쩌면 좋을까.
적요는 진열대에서 한 뼘 사이즈의 조그만 간장병을 집어들었다. 키리츠구는 작은 간장을 사고 남는 거스름돈으로는 간식을 사도 좋다고 하며 백 엔 짜리 동전을 다섯 개나 동전지갑에 넣어주었다. 적요는 목에 동전지갑을 목걸이처럼 건 채 유제품 코너로 향했다. 시로가 좋아하는 푸딩을 사기 위해서였다. 가끔가다 화재의 기억을 떠올리고 침울해지는 동생을 달래주기에는 푸딩만한 것이 없다. 적요는 푸딩 두 개와 간장병을 품에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적요가 가게를 돌아다니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았던 가게 주인은 고양이를 모티브로 만든 가방에 푸딩과 간장을 넣어준 뒤 야무지게 지퍼를 여며주었다.
작은 머릿속 가득 고민거리를 담고 돌아가던 적요는 모퉁이를 돌던 와중 다른 사람과 부딪쳐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며 고개를 들자 태양을 등지고 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적요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붉은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비틀비틀 일어나 얼얼한 엉덩이를 털던 적요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마주하곤 당황을 금치 못했다. 맹세컨대 적요는 이 남자와는 초면이었다. 허리까지 숙여가며 코가 닿도록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 남자는 마치 꿰뚫어볼 것 같은 눈으로 적요를 바라보았다. 적요는 저 붉은 눈 너머에 일렁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20년 남짓의 세월을 짊어졌음에도 파악하기 힘들 만큼 무겁고 맹렬했다. 남자는 아무런 전조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길가메쉬-영웅왕과의 첫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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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