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샤나 프로필 정리(아직 미완성) http://ko.deeprain.wikidok.net/wp-d/5aae45cd454e7c3b26f9d73b/View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한 소녀가 부친을 찌르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무도한 계집을 불태우기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나 그에 불이 붙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비로샤나나 만나라.
요 근래 들어 자주 들리기 시작한 저주였다. 비로샤나는 탈와르 두 자루를 들고 반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도둑이었다. 혼자서 움직이는 주제에 무예가 어찌나 뛰어난지 수많은 경비와 크샤트리아들을 때려눕히고부자나 브라만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그들의 땅에 사는 부녀자들을 훔쳐가는 대단한 놈들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비로샤나가 맞이한 아내들만 50에 다다른다고 할 정도였다. 두료다나는 고민끝에 카르나에게 비로샤나의 토벌을 부탁했다. 앙가의 왕 카르나는 친우의 우환을 귀담아 듣고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카르나는 단신으로 비로샤나를 찾아갔다. 도적은 모습을 숨기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에게 맞섰다. 카르나는 비로샤나에게 속죄와 반성을 권했으나 돌아온 것은 조롱과 비웃음, 그리고 한 쌍의 탈와르였다.
공방전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지평선에 닿아있던 태양이 산봉우리에 걸릴 무렵, 카르나가 비로샤나에게 물었다.
"비로샤나여. 너는 정녕 사내가 맞는ㄴ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냐."
비로샤나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네 검을 받아보면 알 수 있다. 왜 지금까지 네가 여자라는 것을 눈치챈 이가 없었지?"
"하! 그 유명한 카르나가 이렇게 말이 많은 자였나? 이봐, 멍청한 아왕이여.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
둘은 3일에 걸쳐 싸움을 벌였다. 첫날과 둘째날은 무승부였으나 마지막 3일째, 비로샤나는 카르나에게 패배했다. 비로샤나가 탈와르 한 자루를 놓친 순간 숲에서 여인들이 달려나와 카르나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들은 카르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비로샤나를 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비로샤나는 으르렁거리고 발버둥쳤으나 다른 여성들이 비로샤나에게 온몸으로 매달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녀들은 바로 비로샤나가 약탈했던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그리고 바이샤들의 딸과 아내들이었다. 카르나는 아연한 낯으로 창을 내렸다. 그에게는 애초에 비로샤나를 죽일 생각이 없기도 했다. 아왕은 여인들을 물리고 쓰러진 비로샤나의 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비로샤나. 경이로운 여인이여. 그대의 왼편이 예정된 이가 없다면, 부디 나를 그 자리에 두어 주오."
두 남녀는 3일에 걸친 전투 끝에 서로에게 맹렬하게 빠져들었다. 카르나와 마음을 나눈 비로샤나는 두료다나의 영토만은 약탈하지 않을 것을 약조했다. 카르나는 그녀가 약탈을 그만두고 평화롭게 살길 바랬으나 비로샤나의 태도는 완강했다. 카르나는 결국 반쪽짜리 평화를 받아들인 뒤 비로샤나의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
카르나는 자신의 삶에 세 가지나 되는 행운이 깃들었음에 언제나 감사했다. 첫째는 육신과 태양의 갑옷을 주신 친부모의 존재요, 둘째는 버려진 자신을 거둬주신 양부모의 존재요, 세번째는 반려가 되어준 비로샤나-아누슈카의 존재였다.
달의 신 찬드라의 가호를 받는 여인은 은으로 주조한 탈와르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카르나의 마음을 약탈했다. 뛰어난 무용으로 이릎 높은 그도 사랑 앞에서는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다. 구름 낀 밤과 같은 카르나의 세상에 아누슈카라는 이름의 보름달이 떠올랐다. 땅에 발 붙인 인간이 새의 날개를 동경하듯, 카르나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매양 당당한 그녀를 사랑했고, 동경하며, 존경했다.
*
누군가의 평범한 딸이었을 아누슈카는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를 찌르고, 도적의 가면을 쓰고 아수라들의 왕 비로샤나의 이름을 빌렸으며, 거침없이 브라만의 재산을 빼앗았다. 그런 그녀가 여인들을 약탈했던 것은 동질감 때문이었다. 늙은 부자에게 초경도 치르지 않은 딸을 팔아넘기려던 아버지를 두었던 자신과,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들에게 학대당하던 그녀들을 겹쳐 본 것이다.
"이대로 비참하게 살것인지, 아니면 내게 약탈당하여 이 곳을 벗어날것인지 선택하라!"
약탈당할것을 선택한 여인이 아흔아홉이었다. 그녀들은 비로샤나의 어미이고 누이이며 비로샤나 자신이었다. 카르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
그러던 어느날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카르나가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났다. 태양의 갑옷은 어디 갔는지 온 몸이 한 군데도 빠짐없이 상처 투성이였다. 마치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지기라도 한 것 같은 몰골에 아누슈카 역시 기함했다. 카르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숙적과 결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결투 전에 몸을 상하게 하는 전사가 어디에 있는가!!"
아누슈카는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카르나의 앞길을 막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한 명의 어엿한 전사였다. 아누슈카는 찬드라의 축복이 담긴 은팔찌를 카르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신의 저주를 제외하고 저주를 막는 신묘한 보물이었다. 아누슈카가 수많은 크샤트리아와 브라만을 죽이고 약탈했음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태양신의 아들 카르나. 나는 당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르나는 아내의 믿음을 업고 전장에 섰다. 그리고 무참하게 진흙 위를 구르며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카르나를 주살한 아르주나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아누슈카는 그 소식을 부정하며 직접 아르주나를 찾아갔다. 과연 모두의 앞에 선 아르주나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고, 남편이었던 자는 목이 잘려 있었다. 카르나아ㅘ 직접 칼을 맞댔던 아누슈카는 아르주나가 부정한 수를 썼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즉시 카르나의 머리 없는 시신이 안치된 궁으로 숨어들어가 인드라의 창, 바샤비 샤크티를 훔쳤다. 신의 창은 자격이 부족한 이를 거부했다. 찬드라의 은팔찌도 없던 탓에 창을 쥔 손부터 저주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아누슈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비로샤나의 가면을 썼다.
*
비로샤나가 카르나의 창을 들고 모습을 나타내자 모든 이가 두려워하며 감히 가까이 하지 못했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카르나의 창이다. 신의 창으로 왕자의 목을 따는 것은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군. 나와라. 아르주나!"
옷 위로 드러난 상반신은 이미 저주로 반쯤 먹힌 상태였으나 비로샤나는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몰골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를 썼다. 아르주나는 비로샤나와의 싸움을 받아들였다.
공방전은 치열했으나 길진 않았다. 아르주나의 화살이 비로샤나의 심장을 꿰뚫고, 비로샤나의 창이 아르주나의 옷을 찢고 가슴팍에 바늘같은 생채기를 남겼다. 비로샤나는 전차 밖으로 나가떨어지면서도 창을 놓지 않았다. 이미 저주에 ㅁ거힌 심장은 둥근 구멍이 뚫렸음에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아싿.
"아르주나여. 카르나는 온 몸의 피부가 벗겨졌어도 나보다 훌륭했다. 무슨 술수를 썼느냐? 얼마나 더러운 수를 썼기에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카르나의 목을 베었느냐."
비로샤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르주나는 고민끝에 입을 열었다.
"그가 탄 전차가 넘어졌을때, 빈틈을 노려 그를 쏘았다."
비로샤나는 아르주나를 응시했다. 아수라의 가면을 쓴 도전자는 통렬한 웃음을 터뜨렸다. 깨진 가면이 바닥을 뒹굴었다. 비로샤나는 바샤비 샤크티로 하늘을 겨누곤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외쳤다.
"들어라, 뇌신 인드라여! 카르나의 아내 아누슈카가 증명한다! 바샤비 샤크티는 패배하지 않았다!"
거기까지였다. 아누슈카는 창을 놓치고 저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저주로 반 이상 침식되어 있음에도 평온했다.
"아르주나여. 너는 네 스스로 족쇄를 찼구나. 카르나의 이름이 네 평생을 따라다닐 사슬이 되었구나. 내가 너를 저주하기도 전에 네 스스로 너를 저주하고 말았으니, 내가 손을 쓸 이유가 없다."
아누슈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아르주나는 아누슈카의 목을 베지도 않았고, 만천하에 비로샤나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았다. 상처 없이 멀쩡해보이는 아르주나와, 모습을 감춘 비로샤나를 보고 많은 이들이 비로샤나가 결투 도중 비겁하게 도망을 친 것이 아니냐며 입을 모았다. 아르주나는 비로샤나의 행방에 대해 끝끝내 침묵했다.
아누슈카는 아르주나의 궁전 깊숙한 방에서 눈을 떴다. 저주의 진행은 거의 멈춰있었다. 신께 사랑받는 자-아르주나의 손길이 닿았던 탓이다. 아누슈카는 아르주나에게 왜 나를 살렸냐 물었지만 아르주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시종들의 손도 빌리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누슈카를 돌보았다.
3일째 저녁, 아르주나는 맥락 없이 입을 열었다. 그의 내면에 있는 크리슈나에 대해 입에 올린 것은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무나 깊게 맺혀있던 앙금에 말은 두서없고 매끄럽지 못했지만 아누슈카는 묵묵히 그 고백을 들었다.
아르주나의 말이 끝났다. 아누슈카는 웃었다. 역시나 죽어가는 자 답지 않은 웃음이었다.
"아르주나여. 너는 지나치게 깨끗하고 결벽하구나. 네 안의 어둠은 누구나 품고 있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고결하여 사랑받는 자라면 그런 어둠 따위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누가 그렇게 정했다더냐? 신마저도 정결치 못해 우스운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데 한갓 인간이 어찌 완벽할 수 있다고? 아르주나여, 들어라. 네가 누구에게 얼마나 대단한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있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너의 문제이고 네 자유다. 달갑지 않은 선물을 억지로 주고 기대하는 이야말로 배은망덕하고 무례한 이 아니더냐."
아르주나는 당황했으며, 분노했고, 마침내 좁은 방을 뛰쳐나갔다. 다음날 아침 아르주나는 신부가 쓰는 관과 예물, 그리고 신성한 붉은 염료가 담긴 작은 접시를 가져왔다. 그는 아누슈카의 머리에 신부의 관을 씌우고 목에는 예물을 걸어준 뒤 이마에는 붉은 점을 찍어주었다.
"아르주나여. 나의 예물을 감당할 수 없다면 이 기만들을 거두어가라."
아르주나는 예물이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거둔 아흔아홉 자매들의 평생을 책임지는 의무. 그것이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예물이다."
아르주나는 무거운 예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누슈카는 하루동안 아르주나의 아내로 지낸 뒤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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