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마술사는 용의 심장을 가진 소녀를 사랑하고 말았다. 사람의 감정을 모르는 그에게 사랑을 가르친 소녀는 기어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꽃의 마술사는 온갖 감정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뚫린 수맥처럼 감정이 흘러넘쳤으나 멀린은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꿈 너머에서 만난 작은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자신의 손으로 왕의 앞날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멀린은 인내심을 돋우어 준 아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느때보다 공들여 꿈을 다듬었다.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아이의 아름다움에도 지지않을 만큼 아름다운 꿈이 자락을 펼쳤다.
지고한 왕의 피를 이은 소녀를 얽어매고 있는 것은 신의 저주였다. 여러 신성이 심혈을 기울여 짜낸 저주의 멍에는 멀린으로서도 쉬이 벗겨줄 수 없었다. 꿈속마저도 따라오는 쇠약의 저주를 풀어내는 것은 육신의 업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었다. 대신 멀린은 아이가 바라고 바래왔던 것을 조금만이라도 맛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꿈속은 가리는 동시에 드러내보이는 공간. 달이 뜨고 해가 지는 짧은 시간 동안 신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멀린은 선물을 건넨 사람의 심정으로 꿈속의 아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언제나 호수물처럼 차분하기만 하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웬걸, 작은 은인은 당혹스러워하고 황망해하더니 이내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깊게 숨을 쉬어도 가슴이 아프지 않은 몸, 달려도 다리 힘이 풀리지 않는 몸. 크게 소리를 질러도 목과 머리가 아프지 않고 향기로운 것을 먹고 마셔도 배가 아프지 않은, 건강하여 평범한 몸을 겪게 해 주었는데 어째서 우는걸까. 멀린은 멀거니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어째서…….”
울음 섞인 속삭임이 새어나왔다.
“어째서!!”
외침은 차라리 비명소리같았다. 목소리에 올올이 배인 비통함에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다. 멀린은 당황했다. 제어하던 이가 흐트러지자 꿈이 요동쳤다. 바닥이 흔들리자 아이가 크게 휘청였다. 멀린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아이는 멀린의 손을 뿌리치고 꿈의 균열 사이로 떨어졌다.
찰나동안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붉은 눈동자에 담겨있는 것은 절절한 비탄과 날카로운 원망이었다. 꿈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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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한 사람은 마술사였다. 아이의 방은 그 어느 때 보다 진한 꽃향기가 가득해 숨을 쉬는 것조차 꺼림찍했다. 천개가 드리워진 침대 너머에서 억눌린 신음소리가 들렸다. 마술사는 거침없이 침실에 발을 들였다. 마술의 신비가 서린 꽃향기는 그 자체로 결계나 다름없었지만 해주는 손짓 몇 번이면 충분했다. 누가 감히. 마술사는 웅크려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분노를 씹어 삼켰다.
아이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었다.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실증언적인 의미대로.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것만으로도 병약하고 작은 몸은 순식간에 한계에 다다랐다. 몸을 무너뜨릴 만큼 무거운 비애가 감겨있던 영혼의 눈을 띄웠다.
마안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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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리. 그것에게 마음을 쓰지 마라."
한껏 찌푸려진 왕의 미간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시두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어전을 나섰다. 왕의 진노가 등을 떠밀 기세로 쏟아졌지만 시두리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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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키두의 죽음은 우르크를 흔들었다. 신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왕의 친우가 맞이한 비극적인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친우의 죽음 앞에 한참을 방황하던 왕은 어느날 지구라트에 올라 오랫동안 우르크 전역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왕은 종적을 감추었다.
신민들은 사라진 왕을 기다렸으나 통치자를 잃은 나라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이름없는 공주는 그들을 규합할 구심점이 될 수 없었다. 왕 잃은 백성들은 나라를 떠나갔다. 시두리는 홀연히 사라진 왕에게 한마디 해줄 때 까지 결코 떠나지 않겠다 벼르며 자리를 지켰다. 소녀는 시두리의 곁에 남았다. 가없는 기다림은 그 자체로도 힘겹다. 시두리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지만 소녀는 그녀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작은 비관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읽어냈다.
눈두덩이를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마침내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 곳을 바라보더라도 새파란 하늘만이 가득 눈에 들어온다. 소녀는 해를 등지는 방향으로 서서 영혼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선별選別의 마안.
마안이 발동하자마자 눈과 연결된 마술회로가 비명을 질렀다. 격통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통증을 참는 것은 익숙하다. 천리안과 달리 소녀의 마안에는 제약이 수두룩했다. 그녀의 마안은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여 확정적으로 시간선에 붙들어 매 버린다. 만약 그녀가 선택한 미래가 가능성이 없는 헛된 예측이라면 미래는 아무런 억지력도 없이 흘러간다. 그 점을 보완하는 것은 관위의 마술사를 흉내내는 수준의 현재시, 그리고 어설픈 현재시를 분석하고 가능성을 예측할 만큼 영리한 머리의 몫이었다. 마안도, 어설픈 현재시도 꽃의 마술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그의 배신을 겪지 않았더라면 얻을 일 없었을 것들이었다. 그 날의 비통함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붉은 선혈이 방울방울 떨어지더니 흙먼지 엉킨 벽돌 위에서 산산조각났다. 소녀는 코를 적시고 흐르는 핏물을 방치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현재’의 모든 정보가 밀려들어와 머리가 터질것만 같았다. 육신의 눈이 흐린 것이 또다시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소녀는 정보를 선별하고 가능성을 계산했다. 왕의 귀환이 머나먼 미래의 일이었다면 소녀는 정말 목숨을 걸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소녀와 시두리에게는 다행히도 왕의 귀환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소녀는 왕이 귀환하는 날들 중 가장 빠른 시일을 골라 시간선에 고정시켰다. 뜨끈한 것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소녀는 그것을 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렸다. 이런 것은 오히려 막으려고 했다가는 울혈 때문에 큰일이 난다. 소녀는 몇 번이나 미래를 확인한 뒤 마안을 감고 거처로 돌아갔다. 소녀의 몰골을 본 시두리가 기겁을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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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인의 손과 함께 아득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 시두리는 느린 성장에 맞추어 천천히 영글어가는 소녀의 아름다움을 보며 오랜 고뇌 끝에 손을 더하는 장인의 솜길을 떠올렸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건만 며칠, 몇 주, 몇 달 뒤에 다시금 바라보면 과거보다 더욱 빼어난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목구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경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시두리와 눈이 마주치자 쑥쓰러운 듯 사랑스럽게 웃음지었다. 시두리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때때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본래는 폐허가 된 우르크 시가지에서 무언가 이득을 보기 위해 찾던 이들이었다. 방랑하는 이들이 그러하듯 거칠고 위험한 분위기를 무기처럼 두르고 있던 그들은 이내 소녀를 발견했다. 폐허에 남아있는 것은 슬슬 연륜이 쌓이기 시작한 제사장과 소녀 뿐. 소녀가 기르는 사자도 사냥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방랑자들이 소녀를 데려가고자 했다면 시두리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을 테지만 시두리는 그런 불상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한 바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넋이 나간 얼굴로 소녀를 바라만 보던 방랑자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지극한 경배를 올리는 와중에도 방랑자들은 소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는 것을 힘겨워했다. 그들은 소녀와 시두리의 의식주를 살피고 몇마디 대화를 나눈 뒤 보다 풍요가 남아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식재와 약재, 옷가지 따위를 들고 다시금 찾아올 때 즈음 그들은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가 되어있었다. 시두리는 그들의 경건한 몸짓에서 순례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소녀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섬기는 신에 대해 함부로 발설하는 것 또한 불경의 일종인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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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를 잃었으나 깨달음을 얻었다.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였다. 벅찬 감정을 정리하며 우르크가 있을 방향을 헤아리던 길가메쉬는 문득 눈이 닿은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천리안을 가진 이나 간신히 알아챌 수 있을 표식이었다.
영초를 찾으러 가는 여정 내내 저 표식들이 몇 번이나 길가메쉬의 시선을 잡아끌었던가. 불로불사에 대한 갈망에 눈이 멀었을 때는 그토록 짜증스럽기만 하던 표식들이 지금 이 순간은 불안한 얼굴로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어린아이처럼 애처롭게만 보였다. 표식이란 곧 길이었다. 알아볼 눈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생긴 오솔길처럼 보일테지만 길가메쉬는 이 길들이 모두 우르크로 향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길은 모두 길가메쉬가 영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뒤에 생겼다. 생긴 경위를 알아내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딸은 우르크를 떠나는 신민들에게 조언과 함께 사소한 부탁을 건넨 것이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나뭇가지를 꺾거나 돌멩이 몇 개를 치워달라는 식의, 유용한 조언에 비하면 한없이 사소하여 부담없는 부탁들. 우르크를 떠난 신민들이 남긴 것은 작은 나비날갯짓이었다. 그러나 나비가 일으킨 작은 바람은 곧 서로가 일으킨 바람과 맞물려 태풍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들이 모두 길가메쉬의 귀환을 앙망하고 있었다.
자신이 우르크로 돌아갈 미래를 시간선에 고정시켜놓기까지 했으면서도 이런 복잡하고 섬세한 안배에까지 신경을 쓰다니.
헛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무릇 덧없고 연약하다지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딸은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그런 몸으로 이런 복잡한 업을 짊어지다니,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길의 끝에 딸이 있다. 대화는커녕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병약한 딸이. 길가메쉬는 보물고에 남아있는 영약들의 종류와 개수를 헤아렸다. 그것의 위중한 상태를 생각하면 영웅왕으로서도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 너무 오래 글을 안썼더니 손이 심각하게 무뎌짐....................... 쓰는것에 의의를 두는걸로............
+ 우르눈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내가 그거를 묘사를 못한다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길가 딸이니까 양심 버리고 미모 묘사해도 될거같다는 그런 느낌(눕기
세상을 부수고 만드는 것만 같은 굉음은 7일 밤낮동안 이어졌다. 귀를 괴롭히는 소음이 사라진 뒤에도 청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과연 놀라웠다. 우르크의 신민들 사이로 폭군 길가메쉬가 친우를 사귀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왕이 드디어 폭정을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함께. 훔바바의 삼나무 숲, 그리고 성창 샴하트와 그의 이야기까지, 길가메쉬 왕의 둘도 없는 벗-엘키두의 정체를 유추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왕을 위한 참된 안배. 하늘의 쐐기를 바로잡는 올바른 사슬. 아이는 희미한 한숨과 함께 소외감을 수용했다. 애초에 이 땅 위에 아이에게 허락된 자리는 없었다. 인정하고 수용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확정이 나 버리니 마음속 깊은 곳이 울렁였다. 다시금 원망이 흉곽 안쪽에 소록소록 쌓인다. 신들은 이미 왕을 위한 안배를 준비해 두었다. 엘키두에 대한 소문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친부가 어릴적부터 우르크에 자자했다. 그토록 오래된 인연을 준비해놓고 왜 자신을 만들어낸 것일까. 만약을 위한 안전장치라 하기에 자신은 한없이 미약하고 무력할 뿐인데.
아이는 잘 조성된 정원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우울감이 깊어지자 가장 두려워하던 생각이 다시금 발목을 잡아챘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몫인가. 인지받지 못하여 이름조차 없다. 몸뚱이는 병약하기 짝이 없어 화를 내는 것 조차 여의치 않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은 어쩌면 공연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우르크의 사람들을, 시두리를, 때때로 찾아와주는 마술사를, 그리고 꿈같은 인연들마저 모두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주어진 것들이 그것들 뿐이기에, 약해빠진 몸뚱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사랑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고통스러운 사색 속에 누군가가 어깨를 잡았다. 시두리도, 마술사도 이런 식으로 잡지 않는다. 아이는 놀라 눈을 떴다. 그 모습이 마치 경기라도 일으키는 것 같아, 아이의 어깨를 잡은 장본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가 바로 길의 아이구나?”
연두색 머리카락이 바람결을 따라 스르륵 흘러내렸다. 초목의 빛깔을 담은 투명한 눈동자 너머에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기에 이 이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아이와 엘키두의 첫만남이었다.
*
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아이는 진품과 모조품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격지심이란 무릇 모자란 것이 완벽한 것을 바라보는 감정일 터다. 그러나 엘키두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다시 한 번 신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다면 신들을 원망하는 것은 어떨까. 그들이 이렇게 태어나게 만들었다. 친부의 마음을 돌릴만한 무기는커녕 뭇 사람들의 동정심이나 자극할 비루한 몸뚱이 하나를 건네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죽고싶지 않았을 따름이라.
앙금처럼 쌓인 원망은 날이 갈수록 단단히 굳었다. 그 모습이 추하고 비참하여 아이는 가진 바 원망을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참고 또 참았다. 참는 일은 익숙했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다사다난하기에 평범한 나날들의 갈피 사이에 이야기가 하나 둘 채워졌다. 엘키두가 느닷없이 찾아와 새끼 사자를 선물해 준 날이 있었고, 마술사의 손을 잡고 강 위를 산책한 날이 있었다.
아이는 해를 거듭하며 아름다워졌다. 성인 남자의 허리께나 간신히 닿을만한 어린시절부터 빼어나던 생김이 시간이 더해질 수록 깊어졌다.활기와 건강미가 절제切除된 자리에 섬세함과 우아함이 스며들었다. 희고 반듯한 이마에 흘러내린 한 가닥의 금발마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금실을 방불케했다. 이다가 햇빛을 쪼이며 살며시 눈을 내리뜨면 그 아름다움에 익숙한 이들마저 때때로 숨을 죽이고 넋을 잃기 일쑤였다. 투명한 보석에 투과시켜 산란하는 햇살 중 가장 순수한 것만 모아 빚으면 이러할까. 길가메쉬 왕의 용안에도 익숙한 우르크의 신민들 역시 나날이 더해가는 왕녀의 아름다움에 한계가 있을지 궁금해하기까지 했다. 성벽에 영웅의 머리가 걸리는 일에는 모두들 충분히 익숙해져있었다.